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책 읽고 쓰기

23.05 어떤 물질의 사랑 / 천선란


21년 4월에 읽다가 다 못 읽고 반납했던 걸 오디오북 체험으로 듣다가 활자로 읽을 때와 받아들여지는 방식이 달라서 포기하고 다시 전자책으로 읽었다.
단편집이라 짬짬이 읽으려고 했는데 결국은 여유시간이 많아지고서야 한꺼번에 읽게 됐다.



가장 좋았던 단편.
이야기를 끝까지 읽어냈을 때 내 머리에 떴던 느낌표가 좋았다.
보지 않은 걸 그리워 할 수 있다.
<사막으로>



아버지가 된다는 건 여전히 명예를 얻는 수단일까? 압축적이다.
<너를 위해>


아이의 시체를 품에 안아보지 못했으므로 그렇게 기주는 살지도, 죽지도 않은 존재가 되었다.
<레시>
흔적은 흔적을 지운다.
<레시>

처음 읽었을 땐 십여년 전 아이맥스로 봤고 좋아하던 영화와, 서늘했던 강의실의 온도와 습한 공기까지 기억나는 어느 날이 떠올랐다.
두번째 읽었을 땐 약 1년 전 봤던 넷플릭스 드라마도 떠올랐다.
울 수 밖에 없었다.




표제작.
어떤 유명한 만화의 캐릭터가 떠오르다.
매끈한 것의 이미지를 열심히 그리면서 따라가서 작가가 상상한 것은 어떤 이미지일까 궁금.
<어떤 물질의 사랑>


내가 수술을 결심하게 된 가장 큰 몫은 직업에 있었다. 간호사가 감정노동자는 아니잖아. 먼저 수술을 결심한 동기의 말이 마음 속에 내내 얹혀 있다가 끝내 수술 동의서에 서약하게 만들었다.
<그림자놀이>

나의 감정노동과 만나본 적 있는 간호사분들의 모습이 떠올라 이 문장이 마음 속에 얹혀 있었다.

전쟁은 내집단에 대한 정서적 공감이 극대화되어 초래한 비극이라 했다.
<그림자놀이>


어쨌든 그 연민은 추가적인 희생을 동반했다.
……
자신의 남편, 애인, 아들, 아버지는 변하지 않았다고 울며 애원하는 여자들을 내치지 못했다는 말이 더 맞았다.
……
그들의 첫 번째 희생자는 모두 그들을 대신해 울던 여자들이었다.
……
하지만 그런 예외적인 경우를 다 따지기에는 위험변수가 너무 많았다.
<두하나>
"왜 거기 들어갔어요? 왜 규칙을 어기고 위험에 자신들을 내던진 거죠?"
……
"아들을 본 것 같다고 했어요. 어느 한 분이……그 터널에서……"
어떤 탄식도, 한숨도 쏟아지지 않았다.
<두하나>

소설은 특정한 상황에서의 모습이지만, 여성들의 사랑하는 남성을 대하는 태도는 너무너무 낯설지가 않아 소름이 돋았다.

눈치 보고 자란 딸들은 가끔 그래. 짐이 덜 되기 위해서 자꾸 자신의 부피를 줄여. 몸짓도, 소리도, 존재감도.
<두하나>


그러나 동생에 관한 이야기에는 울지 않을 도리가 없다.
내 동생을 찾을 거야.


은지는 지금껏 인류가 알고도 모르는 척했던 일에 책임을 떠안고 싶지 않았다. 불공평하다고 느껴졌다. 그들이 하는 말이 틀리지 않아서 더 그랬다.
<검은색의 가면을 쓴 새>

…내 시절이었던 그들은 왜 떠나야만 했을까. 인사 한번 나눠보지 않았던 그들의 새벽이 서러워 덩달아 뒤척였던 새벽이 많았다.
……
"너는 그 친구들과 또래라 힘들어 하는구나."
……
하나는 누구에게는 아무 일도 아닌 일이구나. 또 하나는 그렇다면 나는 이 감정을 잊지 말아야겠구나.
<작가의 말>


작가의 말이 너무 인상적이었다. 나도 또래라 그런가보지.
동세대의 감정을 공유하는 작가라니 슬픈데 조금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.




어떤 물질의 사랑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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